아이들과 헤어진 지 일주일 남짓인데 꿈꾼 것 마냥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함께 보낸 한 달의 시간은 정말 하룻밤 꿈처럼 너무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하지만 ‘살라히’라는 지역에 도착한 날은 선명히 기억난다. ‘수모’라는 지프차를 타고 유난히 많던 짐 덕분에 아주 힘들게 5시간 정도를 달려 왔던 것 같다. 그 당시 매우 흔들리는 차에서도 양 옆 사람들이 숙면을 취하는 모습은 나에게 신세계였다. 도착한 시간대가 저녁이어서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는 네팔, 특히 블랙리스트인 살라히는 손전등 없이는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캄캄한 와중에도 아이들은 어떻게 우리가 내린걸 알았는지 달려와 무거운 짐을 들어주겠다고 난리법석이었다. 아이들이, 특히 사파랑 티카가 석영언니와 비슷한 나를 ‘이모?’하고 불렀던 상황은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뉴페이스인 나는 신기했었던 듯 하다. 내 주변으로 몰려와 자기이름을 소개하고 내 이름이 뭐냐고 묻기도 했으니 말이다. 도착한지 얼마 안되 정신이 없던 상황과 함께 아이들의 이름 외우기는 나에게 살짝 어려운 신고식이었다. 첫날 이후로도 이름외우기는 어려웠다. 몇 일간 똑같은 아이의 이름을 계속 까먹어 그 아이가 삐지는 상황도 생겼었다.[뿐니마..:)] 많은 아이들이 부모 밑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사소한 것 하나에 관심을 주는 것 만으로도 크게 기뻐하는 듯 보였다. 몇 일간은 자기이름이 뭐냐며 물어왔기 때문이다.
살라히에서 지내면서 가장 빨리, 그리고 많이 친해졌던 아이들은 몇 여자아이들이었다. 비록 언어는 제대로 통하지 않지만 같은 여자이고 내가 여동생이 있어서인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오피스가 있는 건물의 여자아이들은 딱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 같았다.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예쁜 춤을 추길 좋아하고 관심 있는 이성 얘길 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또한 여자아이들과 친해지며 느꼈는데, 서로 다른 곳에서 온 아이들간의 구분이 생각보다 심한 것 같았다. 서로의 건물에 오는 것을 싫어하고, 펌프사용문제, 서로간의 루머를 만들어 나한테 비밀이라며 말해준 스토리도 있었다.[물론 루머였다.] 여자아이들이니 유난히 더 시기나 질투가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되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심해질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여자아이들의 경우 거의 모든 친구들이 나를 좋게 봐주고 친근하게 대했던 것 같은 반면 남자아이들의 경우 몇몇은 내가 돌아가는 날까지도 낯을 가렸던 것 같다. 이런 점에선 좀더 오래있었어야 했다는 후회감과 모두에게 똑같이 다가가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보고 느꼈던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여자아이들보다 남자아이들 몇몇이 사소한 이유로 허락 없이 학교에 가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진짜인지 알 수 없었지만 몸이 안 좋다거나 교복이 마르지 않아서 등으로 말이다. 아이들이 너무 많은 관계로 하나하나 학교를 갔는지 안 갔는지를 체크하긴 어려우나 캡틴의 역할과 함께 적절한 관리가 필요할 것 같았다. 많은 아이들의 비해 스탭 인원이 너무 적은 것이 아쉽다. 아이들에게 관심 갖기에도 부족한 인원인 반해 각자 해야 할 일이 많아 신경을 잘 못 써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애들은 관심을 더 받기 위한 수단인지 아주 사소하게 난 상처나 몸 상태에도 찾아와 봐주길 바랬다. 살라히에 있는 스탭들이 하루에 단 30분, 1시간이라도 아이들의 스케줄에 일정을 넣어 사소한 대화나 놀이 등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싶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얘기를 좀더 하자면 아이들은 ‘우페스’를 매우 무서워 한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듯 하다. 나 같은 경우는 아이들에게 가장 만만한 상대 중 하나였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아무 때나 찾아와 절차 없이 달라고 했다. 너무 잘해주기만 하다 보니 말을 잘 안 듣기도 하고 윗사람의 개념보단 친구관계로 자리가 잡혔었다. 때문에 질서 잡힌 센터가 되기 위해선 엄격한 사람이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현지인인 우페스는 조금 더 다정하게 대화해줬으면 좋겠다. 어떻게 보면 현지인이기에 아이들과 더 소통할 수 있음에도 아이들이 ‘무서움’이라는 벽을 깨지 못하고 피하기만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물건 소유 개념이 부족한 것 같았다. 내가 머무는 동안에도 많은 아이들이 펜, 연필, 슬리퍼 등을 몇 일만에 잃어버리고 다른 친구들의 것을 가져가거나 오피스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좀 더 개선이 된다면 센터 예산절감에도 조금은 도움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세탁한 옷이 잘 마를 수 있도록 빨랫줄이 몇 개 더 필요한 듯 보였다. 인원이 많다 보니 건조 장소에 비해 빨랫감이 너무 많아 애들이 아무 곳에나 널어놓는 것을 보았다. 그러다 보니 땅에 자주 떨어지기 일쑤고 세탁한 옷들이 다시 흙이 묻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각 건물 옥상의 몇 개의 로프를 더 연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이라는 기간이 짧지만 아이들과 정을 나누기엔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아침에 ‘굿모닝~시스터’ 부터 시작해서 마주칠 때마다 껴안아주려고 노력했고, 한 명이라도 더 한마디씩 대화하려고 행동했다. 내가 그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 행동에서 조금이라도 보이길 바랬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아쉬움이 있다면 아이들과 진심을 다해 어울릴 줄만 알았지 그들이 생활하면서 겪는 문제점 개선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너무 짧은 시간이어서
내가 머물렀던 것이 아이들에게 득인지 실인지 의심이 간다. 돌아가기 전 아이들로부터 언제 다시 오냐는
질문을 받았다. 확신할 수 없는 답변을 해주고 많은 친구들이 그 말을 약속으로 받아들였다. 우리아이들은 나를 포함한 많은 봉사자들을 그렇게 다시 기다리겠구나 싶으면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마야라는 친구가 ‘다들
그렇게 말하고 오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을 땐 마음이 아팠다. 스스로
이번 년도에 꼭 다시 한번 방문하리라 다짐하여 구체적으로 갈 방법을 생각해보고 있다. 살라히 아이들에게
단순히 한 달간 같이 지낸 어떤 봉사자가 아니라 다시 보러 오겠다는 약속을 지킨 JHARNA시스터이고
싶다. - 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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